생선은 1년 4계절 가운데 맛이 좋은 철이 따로 있다. 이 시기를 제철이라 부른다. 맛이 좋은 시기는 산란기와 관계가 있다. 어패류는 산란을 앞두고 먹이 활동이 활발해져 몸에 영양분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봄은 도다리를 비롯하여 방어, 삼치, 학공치 등이 대표적이고 여름은 농어, 돌돔의 계절이다. 가을철 대표주자는 전어와 고등어를 들수 있으며, 겨울은 복어, 조피볼락, 굴, 넙치 등이 입맛을 자극한다.
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떨어지는 낙엽의 바스락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어느새 가을이다. 바다와 더불어 사는 이에게 가을이 반가운 것은 가을을 풍성하게 하는 고등어와 전어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철 귀빈 전어

전어회. 전어가 유명세를 치루는 것은 봄에 비해 지방질이 3배 이상으로 많아져 맛이 고소하기 때문이다.
‘가을 전어 대가리에는 참깨가 서 말’, ‘가을 전어는 썩어도 전어’,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갔던 며느리 다시 돌아 온다’, ‘전어는 며느리 친정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
어류를 두고 전해오는 속담 중 맛을 비유한 이야기가 전어처럼 다양한 경우도 드물다. 그래서 이름의 유래도 맛에서 찾을 수 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고기 맛이 좋아 사람들이 값도 생각하지 않고 사들인다 해서 돈을 뜻하는 전(錢)자가 붙어 전어(錢魚)가 되었다며 이름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전어는 남쪽에서 겨울을 보낸 후 4~6월에 난류를 타고 북상하여 연안의 기수역에 서 산란한다. 연안에서 부화된 치어들은 여름을 보내면서 성장하는데 가을이 되면 몸길이가 20센티미터 전후로 자란다. 가을 전어가 유명세를 치루는 것은 봄에 비해 지방질이 3배 이상으로 많아져 맛이 고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가을 횟집에 내걸린 ‘가을 전어 개시’라는 플래카드는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할 뿐 아니라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상징이 되고 있다.
그 런데 전어는 성미가 급하다. 횟집 수족관에 들어 있는 전어를 보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왔다리 갔다리’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가뜩이나 성질이 급한 전어가 좁은 수족관으로 옮겨 왔으니 그 답답함이 오죽할까? 이 급한 성미로 인해 수족관으로 옮겨지기 전 단계인 캄캄하고 답답한 어선의 어창 속에서는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그날 잡은 전어는 그날 바로 횟집으로 수송해야 한다. 이로 인해 높은 파도로 조업이 어려운 날은 공급량이 모자라 시중에서 전어 값이 크게 뛰어 금값이 된다. 물량이 부족해지자 2005년 10월 일부 어민들이 경남 진해 해군부대 작전해역에 까지 들어가서 전어를 잡다가 해군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민들이 가을 한철 동안 전어 잡이 전쟁을 치루다 보니 이제는 錢魚가 아니라 戰魚가 된 꼴이다.
전어는 ‘화살 전(箭)’자를 써서 箭魚로 소개되기도 한다. 납작하고 유선형으로 생긴 몸꼴이 화살촉을 닮은데다 급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빠르게 헤엄치는 모습이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횟 집에서 전어를 주문하면 세꼬시로 장만할지 물어본다. 세꼬시는 뼈를 바르지 않고 뼈 채로 막 썰어낸다는 뜻의 일본말 背越(세고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세꼬시에 대한 순화용어로‘뼈째 썰기’로 바꾸어 부르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뼈째 썰어 장만된 전어회는 살과 함께 잔뼈가 입 속에서 아삭아삭 씹혀 전어를 더욱 맛깔스럽게 해준다. 횟감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전어는 구이나 젓갈용이 되는데, 전어 젓갈은 제주도 특산 중 하나인 자리돔으로 만든 젓갈과 견줄 만한 독특한 맛을 지녀 부산과 남해안의 특산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전어를 고노시로(魚祭)라 부른다. 고기 이름에 ‘제사 제(祭)’가 붙은 것은 전어를 귀하게 대접하여 제사나 축제 때 반드시 올렸기 때문이다. 전어가 축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매년 부산 사하구 명지시장에서 열리는 ‘명지 전어축제’를 비롯하여 경남 삼천포, 경남 하동, 전남 보성, 광양 등지에서는 가을철 귀빈을 맞이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 가을철 남해안과 서해안 각지에서는 가을철 귀빈을 맞이하는 축제가 열린다. 사진은 2011년 가을 부산 명지시장에서 열린 전어축제 모습이다. |
![]() 고등어는 부산의 시어(市魚)이기도 하다. 송도해수욕장에서 열린 고등어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고등어 잡기에 참여하고 있다. |
바다의 보리 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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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형선망어선이 제주도 근해 해역에서 고등어를 잡고 있다. 2 고등어가 대거 출현할 때는 미끼 없이 낚싯줄에 바늘만 몇 개 매달아 던져도 줄줄이 걸려든다. |
가끔 연안으로 고등어 떼가 몰려올 때가 있다. 계절 회유성 어류인 고등어가 이상 증식하면서 대거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이다. 이럴 때면 미끼 없이 낚싯줄에 바늘만 몇 개 매달아 던져도 고등어가 줄줄이 걸려든다. 이렇게 잡혀 올라온 고등어는 맹렬히 퍼덕이다 잠시 후 죽어 버린다. 여유가 있는 낚시꾼은 낚싯대를 한쪽에 제쳐두고 그 자리에서 회를 뜨는데, 고등어 회는 살이 무른 편이라 쫄깃한 맛은 없지만 담백함만은 일품이다. 고등어는 잡은 직후 횟감으로 먹을 수 있지만 조금 지나면 날것으로 먹지 못한다. 자신의 몸을 분해하는 강한 효소를 가지고 있어 죽고 나면 단백질에 함유된 히스티딘이 독성을 가진 히스타민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민감한 사람에게는 두드러기나 복통 등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농 어목 고등어과에 속하는 고등어(高登魚)는 ‘등이 둥글게 부풀어 오른 고기’라는 뜻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옛 칼의 모양을 닮았다하여 고도어(古刀魚)로 ‘자산어보’에서는 푸른 무늬가 있다하여 벽문어(碧紋魚)로 전해진다. 고등어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온대 및 아열대 해역에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며 요각류, 갑각류, 작은 어류, 오징어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폭식성 어류이다. 9월~11월이 제철로 최고의 맛을 자랑하여 ‘가을 배와 고등어는 며느리에게 주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생기기도 했다.

새벽시간 부산 공동어시장. 어선에서 출하된 고등어들이 선별되고 있다.
성질이 급해 잡힌 후 바로 죽어 버리는 고등어의 신선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소금으로 간을 절이는 게 최상의 방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등어는 소금에 절인 상태로 유통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부패되기 쉬운 고등어를 특산물로 만든 곳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경북 안동지방이었다. 어류는 잡자마자 바로 먹는 것보다는 일정 기간 숙성을 거치면 맛이 더욱 뛰어나다. 옛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동해에서 잡힌 고등어가 안동으로 수송되는 하루여 시간 동안 자연 숙성이 이루어지고 이렇게 숙성된 고등어가 간잽이(고등어에 소금 간을 들이는 사람)의 능숙한 손길을 거치면서 간고등어라는 안동의 특산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같은 고등어라도 안동 간잽이의 손길을 거치면 명품 고등어가 되어 비싼 가격으로 유통되지만 대개의 고등어는 서민의 삶과 함께한 대중적인 수산물이다. 보리처럼 영양가가 높으면서 가격은 싼 편이라 ‘바다의 보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고등어는 양은 주전자에 찰랑거리는 막걸리와 함께 고갈비라는 낭만과 해학이 깃든 요리로 탄생되기도 한다. 고갈비는 고등어를 갈비처럼 구워 먹는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부산시 남포동 뒷골목에 고갈비 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항구도시의 낭만을 전하기도 했었다.

고갈비는 고등어를 갈비처럼 구워 먹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